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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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나라의 기후적 특성이라고 하면 사계절이 뚜렷하고 초여름 장마가 집중되는 것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예측할 수 없이 수시로 바뀌는 날씨로 인해 이런 설명도 옛말이 된 것 같습니다. 해가 다르게 우리 삶에서 더욱 깊이 체감되는 기후 변화는 환경에 대한 걱정과 우리와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를 가져옵니다. 

한겨울에도 봄이나 초여름 같은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그다음 주가 되면 여름 같은 집중호우가 찾아오며, 잠시 후 다시 매서운 시베리아 한파가 불어옵니다. 때 이르게 찾아온 따뜻한 날씨에 벚꽃은 봄이 오기도 전에 꽃망울을 터뜨리고, 봄이 되어 꿀을 따러 나온 벌들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합니다. 봄이 미처 오기도 전에 갑자기 여름이 찾아오고, 코스모스는 가을이 아닌 여름부터 벌써 피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계절이 뒤섞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루 사이에도 날씨가 예측할 수 없게 바뀌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국지성 호우와 동남아에서나 볼 법했던 스콜이 내리고, 가까운 지역 간에도 어느 동네에는 비가 내리고, 그 옆 동네는 쨍쨍한 날씨가 이어집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 인근 바다의 생태계도 많이 바뀌고, 예전에 흔히 볼 수 있던 어종들이 사라진 자리를 아열대성 해양에서 주로 관찰되던 어종들이 대체하고 있다는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후 변화가 심각한 위기로 다가오면서 기후 변화로 인한 건강 문제 역시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WHO는 2023년 5월 ‘기후 위기가 곧 건강 위기’라고 밝히며 기후 위기로 인한 질병 발생률 증가, 의료인력 및 인프라에 대한 위협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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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는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기후 변화와 함께 일어나는 자연재해, 재난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꼽을 수 있습니다. 허리케인, 산불, 지진, 화산 폭발, 장기간 이어지는 가뭄, 홍수, 태풍 등은 그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충격과 함께 재산상의 손실과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아픔을 야기합니다. 외상적 사건에 대한 재경험, 거주지 이동으로 인한 안전한 환경의 부족, 기존에 맺어 왔던 관계적 자원의 박탈은 오랜 시간 생존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편 2017년 미국심리학회에서는 우울장애의 일종으로 ‘기후 우울증’을 포함시켰습니다. 기후 우울증이란, 기후 상황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이나 스트레스, 분노, 무력감 등을 의미합니다. 기후 우울증은 특히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직종 종사자나 지역 거주자들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호주에서 진행된 여러 선행 연구에서는 장기간 지속되는 가뭄이 비교적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시골 지역 거주자들에게 큰 심리적 고통을 유발했으며, 가뭄으로 인한 손실이 크다고 느낀 농부일수록 정신적 고통도 컸고, 시골 지역에 거주하는 남성들의 자살률이 증가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서는 농업분야에서 온난화로 인한 자살이 지난 30년 동안 5만 9,300건에 달했으며, 연 강수량이 1mm 증가함에 따라 자살률이 7% 떨어졌다고 보고했습니다. 

2018년에는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연구진이 2002~2012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CDC)가 전국 263개 도시, 2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최고 기온이 30도 이상인 날에는 10~15도인 날에 비해 정신건강이 나쁠 확률이 1% 증가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기온이 25~30도일 때와 비교해 0.5% 높은 것으로, 기온 상승이 분노나 짜증, 화와 같은 부정적 감정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가장 낮은 소득 수준을 보인 사람들의 경우 최고 소득층에 비해 고온의 날씨에서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는 응답이 60%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 기후 변화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가 경제적 취약층들에게 더 문제로 다가올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또 한 달에 25일 이상 비가 내릴 때 정신건강에 이상이 생길 확률이 2% 더 높아진다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기후 변화는 우울, 분노, 불안, 화, 걱정과 같은 부정적 정서를 유발하며 다양한 정신 질환을 야기할 수 있고, 심할 경우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 기후에 큰 영향을 받는 직업 종사자나 지역 거주자가 아니더라도 기후에 대한 염려는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사회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2021년 청소년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88% 이상이 기후 위기로 인한 일상에 대한 영향을 걱정한다고 답했고, 기후 위기로 인해 자녀를 갖는 것을 고민한다는 응답도 58%에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찬가지로 2021년 영국 배스대학교 연구팀이 10개국 청년 1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기후 위기로 인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77%), 슬프다(68%), 불안하다(63%)’는 응답률이 높았습니다. 

 

사실 기후 변화가 어제오늘 갑작스럽게 나타난 문제는 아닙니다.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기후 위기를 지적해 왔고, 세계 각국의 정상들 또한 2016년 파리 협정(Paris Climate Agreement)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동안 누적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의 경향은 지금 우리 삶에서 하루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UN 산하의 기후 변화 정부 간 협의체인 IPCC의 6차 기후 위기 보고서에서는 기후 위기에 더 이상 선택지가 없으며 향후 10년이 골든타임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온실가스 및 화석연료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및 첨단 기술 활용, 기후 탄력적 개발과 같은 즉각적인 변화와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이미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와 환경보호를 위한 사회적, 개인적 노력과 함께 기후변화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 변화가 가져오는 영향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관련 정신건강 문제의 예방 및 적절한 치료, 지원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겠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참고문헌> 문성원. (2016). 기후변화와 심리적 적응. 한국대기환경학회지(국문), 32(3), 237-247.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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