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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정의 연애이야기 - 사랑이라는 그 흔한 말

기사승인 2019.06.18  09: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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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시대를 거쳐 그 의미가 변색된 것도 없을 것 같다. 사랑은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서 변형되고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생각도 너무나도 다양할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긍정적인 느낌을 가져다주고, 어떤 이들에게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단어가 될 수도 있겠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역사를 아는가? ‘원더박스’에 따르면, 사랑은 여섯 가지의 유형을 가진다고 한다.

 

사진_픽사베이

 

고대 그리스인에게 에로스는 성욕과 욕망을 상징하며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사랑이다. 사랑이라고 하면 대부분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상업적인 미디어를 통해 섹시한 남녀가 등장하는 사랑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에로스는 상대를 사로잡고 조종하는, 때로는 위험하고 분별없는 사랑이다.

사랑은 이성간 연애라는 개념 하나로 통합되었고 성적인 것과 무관한 친밀감은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라고 분리하게 되었다. 60대 노부부가 서로의 이불을 덮어주며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에 느끼는 친밀함은 가족 간의 사랑, 즉 필리아의 다양한 형태중 하나가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좀 더 유희적인 시랑 루두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기분 좋게 놀고 즐기는 애정을 말한다. 하루의 긴장을 푸는 술집에서의 농담과 같은 가벼운 관계에서의 사랑이다.

고대 그리스나 정략결혼에서는 유희적인 사랑보다는 아내와 남편의 헌신된 관계가 바로 프라그마이다. 네 번째 사랑, 프라그마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에 빠지는 것과 구분되는 '사랑에 머무는 것'이다. 성숙한 사랑은 결혼하지 오래된 부부가 키워가는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부관계가 지속되도록 하고, 인내심과 관용으로 상대를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프라그마는 배우자에게 국한되어 사랑을 주는 것인 반면에, 아가페는 대상을 한정하지 않고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이타적인 사랑을 말한다.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도 도시나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사랑의 대상이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에로스적인 사랑이 상대의 유익보다는 나의 욕망이 우선적인 것과는 달리 아가페적인 사랑은 아무런 보상이나 의무감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기독교 계명이 대표적이다. 인류라는 범위를 넘어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은 메따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필라우티아라는 자기애가 있다. 자기애를 사랑의 한 종류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이 놀랍다. 자기 사랑은 곧 이타적인 사랑, 아가페와 정반대 되는 개념이 아닌가. 자기애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언급을 하는데, 부정적인 형태의 자기애는 공평한 자기 몫을 넘어서려는 쾌락, 부, 명예를 얻으려는 이기적인 열망을 말한다. 이런 자기애가 갖는 나쁜 평판은 프랑스의 신학자 존 칼뱅에 의해 자기애는 페스트(전염병)로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긍정적인 자기애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인에 대한 사랑까지 연장되는 자신에 대한 감정의 연장을 언급했다. 자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안정감을 느끼면, 타인에게 나눠줄 사랑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지 아는 사람은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방법도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

 

자기혐오나 비하에 빠진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을 두거나 나눠줄 사랑이 거의 없다. 자존감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요즘, 집착에 가까운 자기애를 경계하면서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기적인 열망은 굳이 배울 필요 없이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습득된다.

현대인의 사랑에 대한 욕구는 소울메이트를 원한다. 사랑이란 나를 채워줄 그 누구, 나의 반쪽을 찾는 일이다. 지금처럼 사랑이라는 행위가 모든 것을 우선해서 중요했던 때가 있었을까.

사랑에 대한 욕구는 인간 존재가 안고 있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한 사람의 애인이나 배우자가 대신 채워주어야 한다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왜 사랑에 대한 욕구를 꼭 한 사람이 충족시켜줄 것을 기대하고 그 한 사람이 안 될 경우에 실망하게 되는가. 에로스적인 사랑이 해결되지 못할지라도 필리아를 키워 나갈 수도 있고 밤새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루두스를 충족시킬 수도 있다. 봉사를 하고 종교단체를 통해 아가페적인 사랑을 베풀 수도 있고 자연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수고를 감당할 수도 있다.

애정결핍을 이성과의 사랑으로 채우려는 드는 것이 애초부터 잘못된 가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랑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은 오히려 남녀 간의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 사랑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사진_픽셀

 

정신과의사라면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영혼의 진공청소기처럼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는 애정결핍의 모터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흡입하고 자신을 채우려 든다. 그것이 이성과의 친밀감이든지, 돈이나 쾌락을 주는 그 무엇이 되든지 상관없이 무엇이든지 빨아들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거대한 흡입장치가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신과의사는 여기서 더 이상 인간적으로 도와줄 수 없는 무력감 앞에 놓이게 된다. 과연 우리에게 이 허전함을 달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느냐 말이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얼마나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해답을 오랜 기간 인류가 찾아 헤맸다. 가능성이 희박한 낭만적 사랑의 신화를 계속 좇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런 사람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정서적 욕구와 성적 욕망, 우정, 기분 좋게 해주는 그 누구를 기대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깨달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대 그리스인이나 현대인의 사랑에 있어서도 인간관계에서의 집착이나 착취는 결코 사랑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기보다는 여섯 가지 유형의 사랑이 내 삶 전반에 걸쳐 골고루 나타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요즘 사랑에서 뚜렷한 변화는 '자본주의적 사랑'이다. 성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도 구매해야 하는 분위기이다. 로맨스도 돈과 선물이 필요하다. 매력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명품 옷과 성형수술산업에서 자신을 욕망의 대상으로 시장에 내놓고 거래하기 위한 자본이 필요하다. 이것을 처음 지적한 사람은 에리히 프롬으로 "시장에서 확보 가능한 가장 좋은 물건을 찾았을 때에 서로 사랑에 빠진다."고 했다. 이런 성향은 불필요할 때에는 버린다는 일회성 연애, 또는 이혼 급증의 원인이 되었다.

여섯 가지 유형의 사랑을 모두 다 채워주는 풀 옵션의 사람이 있을까. 답은 없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사랑은 일종의 판타지이다. 나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은 오히려 그런 사랑을 주지 못하는 부족한 그 사람을 연민과 애정으로 받아주면서 타협이 되어간다. 사랑이라는 내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그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과 그 사람의 결핍과 부족함이 오히려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버리는 것을 깨달아간다.

사랑이 무엇인가에 신경 쓰다 보면 기운만 빠질 것이다. 여섯 가지 사랑이 공존하는 생활을 하면 항상 사랑이 부족하다는 애정결핍에서 벗어나 우리네 삶에는 생각보다 사랑이라는 것이 다양하게 공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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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lifestylist@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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