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비만클리닉을 처음 시작한 때는 2001년. 다이어트가 평생이라고 하는 분들과 울고 웃으면서 지냈었다. 비만클리닉을 오는 분들은 3세부터 88세까지 다양하다. 소아비만,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중고생들, 외모에 가장 민감한 여대생, 살찌는 것보다는 죽는 게 낫다고 여기는 식이장애 여성들, 지친 일상에 허덕이다가 술과 폭식으로 버티는 직장인, 출산 후 산후 비만으로 우울해진 엄마들, 사춘기 자녀와 전쟁을 치르는 갱년기 여성들, 빈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는 육십 대 어머님들, '이 나이에 웬 다이어트?'를 되묻는 어르신들까지, 전 국민이 자신은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시는 분들의 가장 큰 관심은 물론 너나 할 것 없이 1kg이라도 빠졌는지 아닌지이다. 마치 성적표를 보여주듯이 체성분 용지를 건네는 분들과 함께 일주일간 써온 식사일기를 살펴보면서 나는 체중의 숫자로 그분들을 절대 칭찬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 진료시간에는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 가서 누굴 만났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하는 사소한 것들을 공유한다.

다이어트를 돕는 의사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을 객관화시키는 겉으로 보이는 체중이나 신체 사이즈와 같은 숫자를 털어버리고 나면 비로소 한 사람이 보이는 것, 그의 몸과 마음을 깊이 알면 알수록 더 많이 도와줄 부분이 생긴다. 

 

비만클리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것이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살을 잘 뺄 수 있나요?”

한마디로, 이렇게 씩 웃으면서 대답한다.

“사랑에 빠지면 살은 저절로 빠져요.”

절대 바람피우거나 따로 애인을 만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시 말하면,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다이어트 시간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고통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옥훈련과 같은 운동과 뻑뻑하고 비린내 나는 닭가슴살 식단? 그런 다이어트는 절대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는 그동안 외부로 빼앗겼던 심리적 에너지를 나에게 쏟아붓는 재충전의 시간이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나’에게 집중하라는 이야기다.

다이어트는 내가 먹는 것을 살펴보고 내 몸 구석구석을 돌보는 시간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먹는 것을 선택하고 내 몸이라는 기계가 하루의 리듬을 찾아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자극을 적당하게 받으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매 순간을 즐기고 행복해하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살이 빠지는 것은 이런 내가 된 이후에 따라오는 보너스다!

 

정신과 의사가 비만클리닉을 왜 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다이어트 성공의 핵심은 식욕 다스리기인데, 식욕 중추는 뇌에 있다. 결국, 살이 찌는 것은 내 탓이 아니라, 뇌 탓이다. 먹어도 배고픈 사람들은 왜 배가 계속 고픈 것일까? 위장이 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뇌가 시키는 것이다. 식욕을 조절해주는 뇌의 중추는 시상하부라는 곳인데, 여러 가지 감정과 본능적인 욕구들을 담당한다. 그만큼 정신과 교과서에도 비만 챕터가 따로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비만과 폭식증의 인지행동치료와 야간폭식, 음식중독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부상하게 되었다.

기분 좋게 먹는 식욕은 좋은 것이지만, 식탐은 특정 음식을 꼭 먹어야 하고 갑자기 먹고 싶어 지면서 음식을 먹어도 해소되지 않는다. 즉, 먹어도 계속 배고픈 분들은 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식욕을 조절해주는 뇌의 회로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대뇌에서 쾌락 회로를 따르게 되는 행위중독과 동일한 경로를 거치기 때문. 게임중독, 알코올중독, 섹스중독, 마약과 같은 중독의 회로를 통해 음식을 자제하지 못한다.

이쯤 되면 먹는 것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무조건 탓해서는 안 된다. 다이어트는 늘 본능의 뇌(변연계)와 이성의 뇌(전전두엽)의 싸움이 계속된다. 다이어트 중이니 먹지 말라는 이성의 뇌와 그래도 나는 저것을 먹고야 말겠다는 본능의 뇌는 오늘도 싸우고 있다. 요즘 식탐을 식욕과 구분해서 ‘가짜 식욕’이라는 부르는데, 감정적 식사로 이어지게 되고 폭식을 유발하기 때문에 가짜 식욕을 일으키는 다양한 감정의 요인들을 깨달아가면서 식탐 뒤에 있는 숨은 감정을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진_픽셀

감정적 먹기(emotional eating)는 심리적 허기, 즉 마음을 배고프게 하는 감정적 요인이 있는데, 예를 들어, 어떤 날은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음식으로 도망가기도 한다. 우울감이나 무기력이 있을 때는 뭔가 짜고 매운 것을 먹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불공평한 일을 겪거나 화가 치솟으면 달달한 것으로 나를 달래주기도 하고 외롭고 허전한 날이면 추억의 음식들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당장 먹어야 하기 때문에 초조해지기도 한다.

20kg가 증가한 워킹맘을 진료한 적이 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냉장고 문을 여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고 집에 가면 집안일과 육아! 퇴근하자마자 두 번째 직업이 시작된다.

내 처방은 ‘미니여행’을 하라는 것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30분 만이라도 나만의 힐링 타임을 가지는 것인데, 한강 고수부지를 산책하기, 집 앞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기, 평소 가지 않는 동선으로 퇴근하기 등 미니여행을 하면서 하루의 긴장을 풀고 곧바로 냉장고로 향하던 조건화된 습관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라이프스타일만 바꾸었을 뿐인데 20kg를 감량할 수 있었던 그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제가 그동안 미련하게 풀타임 직업을 2개 하고 있었네요. 이제 저를 최우선으로 하려고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최우선으로 두고 사랑하기가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다이어트 심리에 대한 관심으로 2011년 ‘초콜릿과 이별 중이다’를 시작으로 2012년에는 ‘그래서 여자는 아프다.’ 2014년에 ‘식욕 버리기 연습’ 그리고, 2018년에는 ‘감정식사’와 ‘49일 식사일기’와 같은 책을 내면서 과식의 여러 유형과 유형별 다이어트 심리 처방을 제안해 오면서 감히 이 결론에 이르렀다.

‘아, 결국, 다이어트는 인문학이구나.’

다이어트가 인문학이라는 생각에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는데 하나는,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다.’라는 것과 ‘어떻게 먹느냐’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김태리가 음식의 재료 하나하나 집중하며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엄마의 부재를 채워나가고 친구들을 식사에 초대하면서 마음의 허기를 달래 준다.

마음챙김 먹기에는 음식의 선택은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누가 치킨을 시켜 먹으면 눈에 보이면 같이 따라 먹는 것은 없어야 한다. 오늘 하루 아침, 점심, 저녁을 무엇을 먹을지 미리 알아두라는 것이다. ‘먹는 것은 바로 나’라는 의미는 내가 먹는 것은 곧 내 몸 안으로 들어와서 내 일부가 되는 것이니 몸에 좋은 음식을 선택하게 된다.

“다이어트 시작하면 라면 먹어도 되나요?”라는 질문도 많이 듣는다. 먹으면서도 살찐다고 걱정한다면 포만감을 느낄 수 없고 식사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가끔은 금기 음식을 허용하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데, 특정 음식을 안 먹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그 음식에 대한 강렬한 식탐은 참을 수 없게 된다.

 

라면은 절대 안 된다고 참다가 자기 직전에 끓여 먹고 자는 분이 계셨다. 어떤 분은 라면은 못 먹고 그냥 생라면을 씹어 먹었다고 한다. 생라면으로 허기가 달래졌을까? 라면의 국물 맛을 음미하고 후루룩하고 먹어야만 만족이 찾아오는데 말이다.

‘어떻게 먹느냐’는 지금 여기 (here and now)에서 내가 먹는 음식에 집중하고 몸과 마음에서 주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마음챙김 식사다. 지금 라면을 먹고 있다면 그 라면의 맛에 집중하는 것이다. 먹고 싶은 욕망과 맛에 대한 감각이 잘 조화시킬 때 <라면명상>이 시작된다. 의도적으로 음식의 재료를 충분히 씹으면서 입안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음식의 향과 냄새 그리고 시각적인 자극은 이미 포만감을 가져와서 적은 양을 먹게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평소 자신의 식사 행동을 관찰해보자. 국에 말아서 후루룩 마시진 않는지, 젓가락을 이용해서 음식을 적게 천천히 집고 있는지, 몇 번이나 씹고 삼키는지, 혼자 또는 다 같이 먹는 것을 선호하는지, 어느 장소에서 주로 먹게 되는지와 같은 ‘어떻게 먹느냐’가 마음챙김 식사를 결정한다.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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