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김혜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부모님들이 아이 공부 잘하는 법으로 상담하는 경우도 있나요?

A. 공부 잘하는 법을 상담받으러 오시는 분은 없고, 오히려 학생들이 저랑 면담하던 중에 물어봐요. “선생님 공부 잘하셨죠? 얼마나 잘하셨어요? 어떻게 해야 의대를 갈 수 있나요?”라는 식으로요. 정신건강 의학 치료를 받다 보면, 의대를 희망하는 친구들이 꽤 많거든요.

 

Q. 공부를 잘하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비법이 있을까요?

A. 요즘에는 아이돌 그룹 구성원의 수가 열 명이 넘어가기도 하는데, 학생들은 그 구성원들의 이름을 아주 정확하게 세밀하게 금방 외우게 되거든요. 반대로 교과목을 공부하거나 젓가락질을 배우는 것 등은 매우 번거로워합니다.

전자처럼 일상적으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그림처럼 떠올리고 술술 얘기할 수 있는 것을 서술적 기억이라고 하고, 나중에 말씀드린 젓가락질이나 악기, 자전거 타기 같은 건 비서술적 기억이라고 합니다.

공부 잘하는 법이라고 하면 대부분 서술적 기억을 좀 더 중점적으로 생각할 텐데요. 시험공부를 할 때, 월요일 국어, 수요일 수학, 즉, 요일별로 한 과목만 왕창 공부하는 방법과 매일매일 여러 과목을 한 시간 내지는 30분 나눠서 공부하는 방법. 둘 중에 어떤 게 더 효율적일까요?

 

Q. 저는 개인적으로 하루에 한 과목씩 공부하는 스타일이었어요.

A. 몰입해서 한 과목을 파면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는 있는데, 과학적으로는 매일매일 각 과목을 나눠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인즉슨, 공부할 때 제일 중요하고 강조하고 싶은 건, 커넥팅되는 것이거든요. 기억이 기존의 학습된 것에 새로운 것을 덧입히고 각색하는 과정이 있는데, 한 과목을 파면 그게 너무나 멀어지는 거죠. 매일매일 공부를 하면 자연스럽게 계속 기존 기억이 재활성화(reactivation)됩니다. 즉, 공부할 때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하는 게 더 좋습니다.

 

사진_픽셀

 

열정과 애정, 관심이 있으면 스스로 굉장히 자세하게 부호화해서 외운다고 얘기해요. ‘부호화’라는 용어를 쉽게 설명해 드리면, 병원 전화번호 중에서 끝이 ‘7575’로 끝나는 번호가 많아요. ‘치료’를 떠올리게 하죠. ‘8282’는 ‘빨리빨리’ 이런 것은 그냥 별 노력 없이도 외워지죠. 어떤 의미가 있거나 인식하기 쉬우면 굉장히 빨리 외우게 되거든요. 그래서 고양이, 사람 등 쭉 단어를 얘기했을 때 “무생물은 빼고 살아있는 것만 외워보세요.”라고 하면 좀 더 쉽게 외울 수 있죠. ‘목차 나누기’라고 생각하면 돼요. 기억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수업을 들어도 마치 도서관 사서가 정리하듯이 여기저기 정리가 잘 되어있고, 그래서 ‘인출’도 매우 잘 되는 거죠.

 

그리고 수면과 공부가 굉장히 관련이 깊어요. 잠을 줄이고 공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수면 자체가 학습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공고화’라는 과정이 수면 시에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시험공부할 때 밤새워서 벼락치기한 내용은 시험 본 뒤 시험장을 나오면 다 까먹어요.

‘공고화’는 새로운 학습을 하지 않는, 방해를 받지 않는 시간에 일어납니다. 기억은 뇌의 한 군데에 박혀있는 게 아니고 분산되어 있어요. 그래서 수술이나 사고를 당해서 뇌 일부가 손상됐다고 하더라도 일부는 기억할 수 있거든요. 내가 어떤 걸 학습했다면 크리스마스트리 불이 깜박깜박하듯이, 수면 시에는 내가 오늘 학습한 거랑 비슷한 기억의 불이 깜빡깜빡하는 거예요. 기존에 있는 기억과 비슷한 걸 학습했다면 양적으로도 늘어나고요.

더 중요한 건 질적으로도 늘어난다는 겁니다. 기존에 알던 것에 대해 좀 더 넓은 통찰이 생기게 돼요. 과학역사 중에서 유명한 꿈 이야기로 벤젠고리 화학식 일화가 있습니다. 그걸 발명한 유기화학자분이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난롯가에서 꾸벅꾸벅 졸게 됩니다. 꿈에서 뱀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걸 봤는데, ‘이렇게 벤젠고리를 설명하면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떠오른 거죠. 혹자들은 너무 거기에 대해서 고민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거 아니냐고 하는데, 사실 수면 중에 꿈에서 통찰을 얻은 거죠.

또 하나 재밌는 건 그분이 학자이기 이전에 건축학도였거든요. 구조에 대해 좀 더 많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이 단순히 화학자였다면 알 수 없었던 것이 기존에 알던 것과 연결된 것입니다.

뭐든지 공부나 경험이나 헛된 게 없는 게, ‘커넥트닷’이라고 하는 개념이 있거든요. 내가 했던 경험들이 그때는 몰랐지만 후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 당장 시험성적 나오지 않았다고 너무 속상해할 필요도 없고, 공부는 하면 할수록 더 잘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아까 얘기했듯이 기존에 내가 알던 게 연결되는 거라서, 경험하면 할수록 질적으로 양적으로 더 커지기 때문에 좋습니다. 이 과정을 위해 수면이 중요한데, 대개 청소년 기간에는 7시간이 권장 사항입니다.

 

다음으로 ‘뇌 가소성’이라는 게 있는데요. 예를 들어 런던은 교통이 엄청 복잡하기로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런던의 택시 기사들이 일반 대조군보다 도로 위치를 파악하는 뇌 부분이 더 통통해요. 뇌를 많이 쓰면 쓸수록 변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러닝 커브’가 있어서 처음에는 좀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공부를 계속 많이 하기 위해서는, 사실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Q. 그럼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비법이 있다면요?

A. 재밌어야 하는데, 재밌어지기 위해선 많이 하는 방법밖에는 없어요. 게임이 왜 그렇게 재밌을 것 같으세요? 자극적인 것도 있지만 사실은 리워드죠. 게임을 열심히 하면 랭킹이 올라가요. 아이템들을 얻고요.

그런데 공부는 내가 오랜 기간 엉덩이를 붙이고 해야 하고, 소위 말하는 과실을 따먹는 건 한참 뒤거든요. 그러면 엄청 지루해지고 하기 싫어요. 그런데 아까도 얘기했듯이, 의미 없는 행동 같지만 계속 공부하다 보면 그게 차곡차곡 보이지 않는 리워드죠. 재밌는 것부터 하세요.

 

김혜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정신과학 박사 수료
전) 강북삼성병원 직업 정신건강연구소 교수
전)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조교수
전)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의료사업단 교수
한국정신분석의학회 심층 정신치료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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