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끊임없이 반복하는 말, 혼자 중얼거리기,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맴돌거나 앞뒤로 몸 흔들기 등등. 이는 자폐를 진단받거나 자폐 성향이 있는 아이들이 많이 보이는 행동 특징입니다. 이렇게 같은 동작이나 말을 아무런 목적 없이 반복하는 것을 ‘상동행동(stereotypped behavior)’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동행동은 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발달장애 아동들에게서 높은 빈도로 목격되지만, 정상적으로 발달하는 아동은 물론 때때로 성인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잠들기 전 전등의 스위치를 끄고 켜는 것을 반복하는 아이나 많이 불안하거나 긴장했을 때 다리를 떠는 어른의 모습은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폐 아동들이 보이는 이런 행동을 통제하거나 단순히 못하게 하는 것은 이들이 하는 행동을 자칫 표면적으로 바라보거나 이들을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잘못 인식하도록 만듭니다. 그보다는 이들이 ‘왜’ 이런 행동을 반복해야만 하는지, ‘왜’ 반복해서 할 수밖에 없는지 의문을 품는 것이 자폐 아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돕기 위한 출발점이 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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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들은 많은 경우 정서 조절에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일상에서 주어지는 자극들의 위험도나 중요성을 판별해서 적절하게 반응하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폐 아동들의 경우, 신경계의 결함이나 이상으로 인해 자신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자극들에 훨씬 더 취약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극도로 불안해하거나 더 자주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정서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자폐 아동이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느낄 때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상동행동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공격적이거나 반항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자폐 아동이 보이는 행동을 단순히 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어떨까요? 아동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안정감을 찾거나 뭔가 불만족스럽다는 표현 자체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자폐 아동이 보이는 이런 행동들을 단순히 ‘자폐성 행동’으로 치부하기보다 아동의 이력과 성격, 생활의 여러 단서들을 종합해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접근해서 답을 구해야 합니다. 

많은 아동들이 자신이 처한 불편한 상황이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마음 상태를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자폐 아동들의 경우, 이런 설명이 더 어렵게 느껴질 것입니다. 따라서 아동이 조절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은 무엇인지, 감각 쪽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한 것은 아닌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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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아동들이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방법은 무척 다양합니다. 상동행동뿐만 아니라, 사물을 규칙적으로 배열한다든지, 어디에 가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늘 소지한다든지, 뭔가를 입안에 넣고 씹기도 하고, 다음 일정을 묻는 질문을 반복해서 하기도 하죠.

자폐 아동들의 경우, 불확실하거나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더욱 큰 불편감을 느끼고 불안정해질 수 있기 때문에 다음 일정을 알려 주거나 원래 계획된 일정이 변경된 경우에는 사전에 고지해 줘서 혼란감을 줄여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일정이 갑자기 바뀐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크게 흥분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때 아동이 보이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을 자극하거나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크게 당황해서 조절 능력을 잃고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임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아동의 행동을 외면하거나 제지하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아동이 느끼는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을 인정해 주고, 어떻게 하면 지금 느끼는 혼란감과 불편감을 덜어 줄 수 있을지 아동에게 질문하고 귀 기울이며 천천히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즉, 자폐 아동이라고 해서 보통 아이들과 다른 특별한 방식이나 접근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동을 세상의 관점으로 단순히 ‘문제 행동’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닌, 아이의 시각과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죠. 아동이 행동하는 방식을 계속 지켜보고 관찰하면서 왜 그렇게 반복해서 행동하는지, 무엇 때문에 흥분하는지 이해함으로써 좀 더 적응적인 방식을 배우고, 스스로를 잘 조절하고 관리하도록 꾸준히 돕는 것이 자폐 아동에게 다가가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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