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동의 두려움 이해하기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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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자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이전보다는 좀 더 많은 정보와 한 단계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텔레비전이나 영화 또는 특별한 어려움을 가진 분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심도 있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면서 자폐를 가진 이들이 특정한 대상에 집착하거나 상동행동(반복되는 행동이나 말)을 보이거나 반복놀이(단순하고 일정한 패턴을 선호하며 하는 놀이)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예를 들면, 자폐 아동의 경우 장난감이나 물건을 나란히 배열하는 데 집중하거나 관심사나 흥미, 활동 범위가 한정되는 특성을 보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자폐를 가진 이들은 왜 이처럼 일정한 패턴이나 반복되는 행동 혹은 경향성을 선호하는 것일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그들의 신경학적 특성이 가장 주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신경학적 특성으로 인해 변화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증폭되는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은 보통 사람들도 이해하기 힘들 만큼 복잡다단한 사건과 문제들로 가득 차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예측 불가능한 것은 세상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예측이 어려운 행동을 일삼으며, 상대방을 불편하고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는데요, 반복되는 일상이나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그들에게 예정됐던 일정이 갑작스레 변경되거나 낯선 사람들 속에서 둘러싸일 때 이들이 얼마나 두렵고 혼란감을 느낄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자폐를 가진 이들이 예측이 가능하거나 특정한 패턴이 반복되는 경향을 선호하는 이유도 자연스레 납득이 갑니다. 

 

자폐를 가진 분들은 이처럼 심한 혼란감과 두려움을 느꼈을 때, 통제 불능의 상태로 돌변해서 주변 사람들, 그중에서도 가장 믿었던 사람이나 친밀하다고 여겼던 사람을 공격하거나 그대로 얼어붙거나 자리를 이탈해 도망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물론 자폐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살다 보면 믿었던 이들에게 실망하거나 불확실한 세상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자폐증이 있는 이들은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할 만큼 자극에 대한 역치가 낮고,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이나 그 스펙트럼이 무척이나 넓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빈번하게 다양한 상황에서 혼란감을 경험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감과 두려움은 그들의 민감한 감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차라리 자신의 신체나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자극을 차단해서 안정감을 되찾기 위해 눈을 감거나 귀를 막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자폐가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이나 혼란감을 경험할 때 보일 수 있는 다양한 반응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다소 과격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그들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볼 수 있을 때,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하거나 조금씩 소통하는 데 한 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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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는 좀 더 예측 가능하고 안전한 세상, 신뢰할 만하고 친밀한 대상이 필요하며, 신뢰로운 관계와 경험이 더 많이 쌓일수록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감과 안정감을 키워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과 믿을 수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1. 일관되게 존중하는 태도 보이기

자폐가 있는 사람은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거나 다른 이들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빈번한 만큼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잘못됐다’는 신호를 보내거나 비난하기보다 인내심을 가지고 일관되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다는 태도를 견지할 때, 위축되지 않고 다시 소통하기 위한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2. 기다려 주고, 반응해 주기

자폐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충분히 곁에서 기다리며, 경청하고, 반응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3. 표면적 행동보다 숨겨진 정서 상태 이해하기

자폐가 있는 사람이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위험해 보이는 행동이나 공격적인 행동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파괴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왜 그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우선 흥분 상태가 진정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거나 너무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적절한 제재를 가해서 침착해졌을 때,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감정에 충분히 공감해 주도록 합니다. 이후에 필요한 규칙이나 설명을 제공하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서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4. 통제감과 선택권 인정하기 

누구든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이나 결정권은 당연히 스스로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일상의 수많은 결정과 선택 앞에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통제감을 획득할 때,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습니다.

 

자폐가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적 상황과 관계들에서 인정이나 칭찬, 공감과 같은 긍정적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다른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여러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단절되거나 그들의 공격적 행동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선과 태도로는 그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이나 두려움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그들의 작은 성취와 소통하려는 노력에 격려와 인정을 아끼지 않을 때, 차차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키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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