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매일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죽음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가족이 죽는 꿈을 꾸면서 울다가 깨는 날이 예전부터 종종 있고요. ‘나이가 들면 괜찮겠지.’ 했는데 성인이 되고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이별, 죽음 이런 게 너무 무서워 계속 상상하게 되고, 나 또는 주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이제 서른인데, 삶이 너무 짧은 것같이 느껴지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마음이 짓누릅니다.

나 또는 가족, 지인이 다치거나 병에 걸리거나 혹은 앞으로 영영 못 볼 수도 있는 상황이 오면 나는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아요. 그래서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도 무섭게 느껴집니다. 그 아이가 아프거나 혹은 잘못되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걱정을 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힘이 드네요. 

뉴스에서 누가 사고로 죽는 걸 보면 한동안 우울하기도 합니다.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난 장면이 아직도 떠올라 가끔 괴롭기도 합니다. 그 사람 가족들은 얼마나 슬플까? 이런 생각을 굳이 하게 되고요.

정을 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무섭게 느껴집니다. 언젠가는 저를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살기는 하겠지만, 저는 아침에 눈떠서 밤에 잘 때까지 매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종교라도 가져야 할까요?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왜 이럴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죽음에 대해 매일 생각하고 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과도하게 느끼는 순간들이 반복된다고 하시니 마음이 많이 힘들고 버거우실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더욱이 이 같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어릴 때부터 시작돼서 꿈으로까지 이어지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짙으실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유한성을 절감하는 시기가 한 번쯤 찾아오기 마련이고, 이에 대해 허무감이나 두려움을 절절히 느끼는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한 생명의 탄생이 그 존재 자체의 선택으로 인해 시작되는 것이 아니듯이 소멸 역시 피해 갈 수 없다는 측면에서 인간이라는 운명의 한계를 실감함과 동시에 자칫 무력감에 휩싸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죽음에 대한 공포에만 짓눌려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각자의 인생 여정에서 우리는 개인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각각의 시기별로 성취해야 할 발달과업들도 어느 정도 이루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본업인 학업에 집중하면서도 교우 관계에도 신경 쓰며 우정을 나누는 경험도 하고, 청소년기와 청년기에는 본격적인 진로 탐색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하기도 하죠. 성인이 되어서는 먹고사는 문제나 이성 교제를 통한 결혼 문제 등등 주요한 과업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지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통찰을 이어 갈 만한 시간조차 없다고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삶과 죽음,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이나 이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오히려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색과 고민을 통해 우리는 유한한 삶의 시간을 좀 더 가치 있는 것이나 우선순위 무게중심을 두고 살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죽음이나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과도해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그러한 불편감을 낮추기 위한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연자님께서 느끼시는 죽음에 대한 공포나 불안감이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어린 시절 가족이나 친척 혹은 가까운 지인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죽음에 대한 직간접적인 트라우마가 있거나, 양육 환경에서 부모와의 분리불안을 경험한 경우에도 죽음이나 이별에 대한 불안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연상으로는 사연자님께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심하다는 것 외에 다른 그 어떤 정보도 나와 있지 않아 정확한 원인을 추측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또 아무리 사연자님의 히스토리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해서 사연자님께서 죽음에 대해 느끼는 과도한 공포심의 원인을 추적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사연자님처럼 죽음에 대한 과도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경우를 ‘죽음공포증(Necrophobia)’이라고 칭하며,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통은 인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사춘기나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노년기에 발생할 확률이 높으며, 죽음공포증을 일으키는 원인으로는 불안정한 정서나 죽음에 관련된 트라우마와 같은 심리적 요인과 선천적 뇌 구조 이상이나 호르몬 불균형 등의 생리적 원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죽음이나 이별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은 사연자님의 사례와 같이 악몽으로 나타나는 등 깊고 충분한 수면을 방해하는 수면장애로 이어지거나, 건강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등 원치 않는 생각이 계속되는 침입적 사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들을 과도하게 걱정하며 앞으로의 계획이나 새로운 만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그렇다면 이러한 사연자님의 죽음공포증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사실, 죽음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우리가 겪어 내고 받아들이며 흘려보내야 할 대상에 가까운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연자님께서 극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일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의 순간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죽음과 이별을 임의로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대상 혹은 사건에 집착하는 것은 결국 불안감을 증폭시킬 뿐이지요. 

그러니 사연자님께서 죽음에 대해 갖는 두려움은 그것을 걱정한다고 해서 절대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한 부정적 사고나 불안을 건강한 사고 패턴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심리치료 중에서도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라고 하는데요, 죽음이나 이별에 대한 사연자님의 핵심 신념, 즉 자동적 사고를 파악하고, 역기능적인 사고를 수정해서 정서적 불편감을 줄여 나가는 방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를테면, 노트 한 장을 펼쳐서 죽음에 대해 사연자님이 갖고 있는 여러 부정적, 부적응적 생각이나 느낌들을 기록해 보세요. 이후에 이를 반박해 보는 생각과 느낌을 기록해 보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이전에 사연자님께서 가지고 있는 핵심 신념은 “가족이나 지인들이 죽는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반박하는 근거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지인들이 죽더라도 힘든 시간을 보낼지언정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슬픔은 옅어지고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어 보는 것이죠. 

또는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더 아껴 주고, 함께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애정 표현도 많이 해 주어야겠다.”라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과 생산적인 태도로 전환하는 방법도 강구해 보시고요. 예를 들면,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가족에게 편지를 써 보거나, 함께할 좋은 일들을 계획하거나 이를 실천해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연자님께서는 지금 서른 살이라고 하셨는데요, 너무 먼 미래의 일들을 생각하며 걱정하기보다 서른 살 버킷리스트(이루거나 하고 싶은 일들), 서른한 살 버킷리스트 등 가까운 시일이나 현실에서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자연스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색으로 흐르는 무의식의 흐름이 삶으로 전환되는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정서를 두려움이나 걱정이 아닌 다양한 관점과 태도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유익한 책들을 읽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텐데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김영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미치 앨봄),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모리 슈워츠)와 같은 책들을 추천드립니다. 

또, 일상적인 불안감을 완화시키는 데는 규칙적인 운동이나 건강한 식습관, 질 좋은 수면과 충분한 휴식 등이 중요하오니 이 부분도 신경 쓰시기를 권유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지속된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이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다루어 보고, 필요하다면 심리치료나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염두에 두신다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잘 극복하셔서 아름답고 멋진 인생의 순간들을 만들어 가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